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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회원릴레이인터뷰]

초록당사람들뉴스레터에 회원인터뷰는  150여명 회원전부를 대상으로 합니다.
초록의 씨앗이 되어 주신 귀한 여러분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초록당사람들의 나아갈 길에 대해 의견도 듣고자 합니다

GMO전문가 김은진

Q 간단한 자기 소개부탁드립니다

A
64년 용띠, 결혼해서 고등학교 입학하는 아들과 6학년 되는 딸이 있지요.
뭐, 둘 다 밖에서 바쁜 엄마를 둔 덕에 일찍부터 엄마보다는 다른 사람들 손에서 더 많이 사랑을 받았지요. 학교에서 하는 방과 후 교실 외에는 사교육 하나 없이 자라서, 공부는 못해도 숙제 때문에 학원 못 갔다는 그런 류의 거짓말조차도 하지 않는다는 거 하나 만으로도 가장 자랑스러운 아이들입니다.

지금은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지만, 88년부터 20년 간 농업관련 단체에서 일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농업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뭔가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살기 위한 몸부림 중에서 (농업이) 가장 소외된 분야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이게 아니면 안된다라는 생각으로 합니다. 최대 관심사가 “농업살리기”인 셈이지요.

살면서 나를 돌아볼 때 가장 큰 장점은 좌절하지 않는다는 거같아요. 내 뜻이 관철될 때까지 끝까지 밀어붙이는 편인데 그것을 가장 큰 장점이자 문제점이라고 다들 말합니다. 거기다 더해서 거절하지 못하는 천성을 가지고 있어 지금도 수첩에 “행복해 지려면 No 당당히 말하라”라는 칼럼을 가지고 다니는데 별 효과가 없이,(누군가가) 그저 불러주기만 하면 거절않고 달려갑니다. 강사료에 대한 개념조차 없다보니 주위 후배들 중에는 자신들이 비서로 강사료 챙기는 것이라도 해주겠다는 친구까지 나올 정도...

그런데 이 경제에 대한 개념 부족이, 교수가 되기 전에는 월 100만원으로 몇 년을 살아도 부족한 줄 모르고 살았다는 거(에 도움을 준거 같습니다)
지금도 40 중반에, 전셋집도 없어 학교 사택에 살지만 별로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는 거..
그래서 저절로 생태적으로 살 수 있게 되고, 꿈꾸는 미래가 항상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거... 이런 것들이 지금의 나입니다.

Q  GMO전문가로 알고 있는데요. 일하시면서 기억에 특별히 남거나 보람을 가지게 된일은?

A
사실 GMO 공부를 하게 된 건, 농어촌사회연구소의 권영근 소장님이 이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권해서 시작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게 다행히 내 전공(경제법)과도 잘 맞아서 무리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보람이나 특별한 기억보다는 그 한 가지 일에 10년을 쏟아 부을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좋았습니다. 그 덕에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지금 GMO에 대한 대안으로 토종 종자 살리기 등을 할 수 있게 된 것 등, 지난 10년 자체가 모두 다 소중합니다. 더욱이 사람이 언제 어디서든지 한 가지의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보람이고, 그 덕에 교수가 될 수도 있었구요.

Q 초록당사람들에 가입하게 된 계기

A
정원섭씨는 한미FTA문제로 시끄러울 때, 초록정치연대에서 토론회하면서 저를 토론자로 불러 주신 분이지요. 그때 인연이 되었지만 사실 초록당이 필요하다 아니다를 떠나서 그 당시에는 나 아니라도 많은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나까지 돕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고...^^ 이후 짐작만으로 보자면 내부적인 문제가 아닐까 하지만, 초록정치연대가 해산하고 많은 분들도 떠났고 그런 와중에 (작년)생명평화축제에서 정원섭씨를 만난 순간, 여전히 (정원섭씨) 혼자(?)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도움은 못되더라도 지금이 바로 나라도 함께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고나 할까? 물론 정규직이 되어 경제적인 여유도 약간 생겼고...

제 천성이, 안되는 것을 보면 꼭 내가 뭔가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갑작스런 사명감이 솟아 나는지라 큰 고민 없이 생명평화축제에서 정원섭씨 보자마자 충동적으로다가 가입했습니다.

Q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던 사건

A
가장 오래된 사건은  항상 미국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양놈’이라고 부르면서,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해 어떤 짓을 하는지를 수시로 얘기해 주시던 우리 아빠... 난 대학에 가서야 ‘양놈’이라는 말이 표준말이 아니라 감정이 섞인 단어라는 사실을,  그리고 모든 사람이 미국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문화적 충격같은 것을 느꼈습니다.미국에 공부하러 갈 때도 그게 미국에서 주는 장학금이 아니었다면 우리 아빠의 동의를 얻기가 아주 힘들었을 것같습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사건은 2003년 GMO반대 생명운동연대 사무국장 시절 GMO 소모임을 여성중심으로 꾸리기 위해 서형숙 선생님과 전화했던 것입니다.
당시 내용은 ‘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뭐든지 ’반대‘라는 글을 붙이고 할까? 수돗물 불소화반대, GMO반대 등등.. 좀더 긍정적으로 어떤 것을 하자라는 대안을 내오는 운동은 할 수 없는 것일까?“라는 것이었는데 그 전화를 계기로 GMO반대가 아니라 GMO의 대안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덕에 지금 토종종자지키기, 농민중심의 직거래운동 등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 작년의 촛불집회도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운동에 대한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되었구요

Q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책

A
우리사상의 혁명’
지금은 이 책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겠지만 이 책을 읽고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할까? 이 책의 주제가 바로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사상도, 정치도, 철학도, 경제도 사람을 우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그래서 지금도 사람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가끔 사람보다 일을 우선시 하는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을 다잡게 해주는 책입니다.

또 대학교 때 읽었던 ‘체 게바라’는 친구가 권해서 읽었는데  자신을 버리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어요. 무엇보다도 자신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던져야 한다는 신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고 이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때 즐겁고 지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게 되었어요.

Q 초록당사람들을 밖에서 바라보실 때 이미지는 어땠나요?

A
이상과 현실이 항상 일치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단체?
많은 사람들이 꿈꾸지만 자신의 몫으로 선뜻 나서지 않는 ‘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한계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것, 구체적으로 현실정치에 뛰어드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이라 더욱 그런 이미지를 느끼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 꿈이 현실로 나타났을 때 나도 한몫했다는 위로를 얻을 수는 있겠지요.그런 날이 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Q 초록당사람들에 가입하실 때 가지신 기대는요?

A
앞애서도 말한 것처럼 그 꿈이 실현되었을 때 나도 한몫 했다는 위로?
앞으로 -초록당사람들-이 어떤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한다는 것있으면
역시 운동은 구체적인 생활운동이 주가 되어야 할 듯합니다.
최근에는 더욱 그런 활동을 통해서만이 국민 다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관련 다양한 단체들이 하는 운동들을 함께 벌여나가는 것이 어떨까 싶구요.
예를 들어 후배 중에는 발바리가 있습니다. 물론 자전거 타고 어디든 갑니다. 한때 집은 퇴계원인가 그 근처 어디였는데 거기서 하남시의 직장까지도 항상 자전거로 다니더군요.

선언적인 것이나 강령 등도 중요하지만 역시 아무래도 그런 현실적인 것들을 함께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다양한 소모임 활동이 중요할 듯...

Q 바라는 활동

A
가장 바라는 것은 환경관련 모든 이슈를 인터넷에서 검색할 때 초록당사람들의 홈페이지가 항상 맨앞에 나올 수 있기를.
두 번째 바라는 것은 수도권이 아닌 지역 중심의 활동 방안을 모색하는 것.
역시 초록은 시골에 가야 제 맛이 아닐까라는 생각...

다양한 소모임 가운데 지역모임이 있었으면 좋겠고, 때때로 문명의 혜택 없이 살아보는 이벤트도 했으면 좋겠고, 내가 오늘 한 행동이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홈페이지에 가면 언제든 계산해 볼 수 있는 자료가 있으면 좋겠고...

Q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원칙이나 신념이 있다면?

A
몇 년 전 불교환경연대의 강좌 제목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
내 전화에도 그 문구를 새겼고 항상 그렇게 살아보는 것이 소원에요.

거기다 더해서 “더디가도 사람생각하지요” 이건 오래전 후배가 학생회장 출마하면서 내건 슬로건인데 여전히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어제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 인터뷰 진행, 정리: 김윤희 회원

Posted by 초록당사람들